콘텐츠 제목 짓는 법, 정확한 명칭 대신 상대의 장면으로

제목이 정확한데 아무도 열어보지 않는다면 손댈 곳은 내용의 깊이가 아니라 그 내용을 부르는 방식입니다. 전문 명칭을 상대가 문제를 겪는 장면의 말로 옮기는 순서와, 검색되는 말을 한 제목 안에 함께 두는 절충을 정리했습니다.

3줄 요약

  • 제목이 정확한데도 열리지 않는 이유는 내용의 깊이가 아니라 그 내용을 부르는 방식에 있습니다. 정확한 명칭은 이미 그 주제를 아는 사람만 알아봅니다.
  • 장면의 말이란 그 문제를 실제로 겪는 사람이 그 순간에 내뱉는 문장입니다. 〈건축 소음 진동의 이해〉를 〈엄마 집에서 귀신 소리가 나요〉로 옮기는 변환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 클릭과 검색 노출까지 책임지는 제목이라면 장면의 말만 남겨서는 안 됩니다. "층간소음"처럼 사람들이 실제로 검색창에 치는 말을 한 제목 안에 함께 둬야 합니다.

강연·인터뷰·웨비나 촬영본을 쌓아둔 채널에서 가장 자주 방치되는 자리는 제목입니다. 발표 자료의 목차명이 그대로 파일명이 되고, 그 파일명이 그대로 클립 제목이 되죠. 내부에서는 더없이 정확하지만 밖에서는 아무도 그 이름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저희가 가장 오래 멈춰 있던 대목은 제목을 바꾸자 없던 소재가 딸려 나온 장면이었습니다. 제목을 마지막에 붙이는 포장으로 다루면, 그 제목이 오히려 소재를 불러온다는 사실은 보이지 않습니다. 제목은 콘텐츠의 마감이 아니라 기획의 출발점입니다.

지금 쌓여 있는 콘텐츠 제목을 한 번 훑어보시면 목차명이 그대로 얹혀 있는 편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손댈 곳은 내용의 깊이가 아니라 그 내용을 부르는 방식입니다.

제목이 정확한데 왜 그 문제를 겪는 사람이 지나칠까요?

정확한 명칭으로 지은 제목은 이미 그 주제를 아는 사람만 알아봅니다. 한 분야를 오래 다루면 대상을 부르는 정확한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자료에도 목차에도 그 이름이 적혀 있으니 제목에도 자연스럽게 그대로 옮기게 되죠. 문제는 정작 그 문제를 매일 겪는 사람이 제목 앞에서 자기 이야기인 줄 모르고 지나간다는 점입니다.

장면의 말이란 그 문제를 실제로 겪는 사람이 그 순간에 내뱉는 문장입니다. 층간소음을 겪는 사람은 "건축 소음 진동"이라는 말 대신 "귀신 소리"라고 부르죠. 사실을 장면으로 옮기는 변환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촬영본이 쌓여 있을수록 이 차이가 크게 벌어집니다. 내용은 이미 만들어져 있고 바꿀 수 있는 것은 앞에 세우는 한 줄뿐이라, 시청자가 찾을 이유는 전부 그 한 줄에 실립니다.

내 이야기는 콘텐츠가 안 된다는 생각은 어디서 올까요?

자기 지식과 경험을 콘텐츠로 만들지 못하겠다는 판단은 대체로 네 가지 오해에서 나옵니다. 대단한 학식, 대단한 경험, 대단한 성과, 대단한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죠. 네 가지 모두 반박이 가능합니다.

흔한 생각 실제로 작동하는 기준
대단한 학식이 있어야 한다 초파리 앞다리를 30년간 파고든 논문은 학식으로 치면 더없이 대단하지만, 그것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대단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경험은 그 자체로 콘텐츠가 되지 않고, 주인공·사건·인과관계가 맞을 때 전달 가능한 형태가 됩니다
대단한 성과가 있어야 한다 시청자가 듣고 싶어 하는 것은 손닿지 않는 성과가 아니라 나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성과입니다
대단한 재능이 있어야 한다 재능은 구조화되고 검증된 훈련으로 대체되는 영역이라, 타고나지 않았다는 말은 아직 훈련하지 않았다는 말에 가깝습니다

막히는 자리는 내가 가진 것의 크기가 아니라 그것을 꺼내 부르는 방식입니다. 자료를 더 모으기 전에 제목부터 다시 부르는 편이 빠릅니다.

경험이 사담 대신 콘텐츠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경험이 전달 가능한 형태가 되려면 주인공·사건·인과관계 세 요소가 맞아야 합니다. 주인공이 놓인 환경이 먼저 설명되고, 그 위에서 사건이 터지고, 그 결과가 원인과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카페에서 한 시간 넘게 자기 이야기만 이어가는 자리를 떠올려보면 차이가 분명해지죠. 같은 분량의 말이라도 한쪽은 사담이고 한쪽은 콘텐츠입니다.

세 번째 요소가 특히 자주 무너집니다. 신데렐라가 마지막에 공룡이 되어버리면 앞의 이야기가 통째로 성립하지 않죠. 실제 콘텐츠에서 시작과 끝이 어긋나 보이는 지점도 대개 여기, 사건은 있는데 그것이 결말과 이어지지 않는 경우입니다.

긴 강연에서 한 구간을 떼어낼 때도 같은 원리가 작동합니다. 잘라낸 구간 안에 주인공과 사건과 결과가 함께 들어 있지 않으면, 길이를 아무리 맞춰도 조각으로만 남습니다.

지식을 다룰 때 가장 먼저 손댈 자리는 어디일까요?

지식을 다루는 콘텐츠에서 가장 먼저 손댈 자리는 구성표도 자료 조사도 아니라 콘셉트, 더 좁히면 제목입니다. 근거는 받는 쪽의 기본 인식에 있습니다. 무언가를 설명해주는 콘텐츠에 사람들이 먼저 붙이는 말은 대체로 "지루하다"이고, 아직 열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미 그 전제가 깔려 있죠.

그 전제와 처음 부딪히는 접점이 제목입니다. 제목이 뚫리지 않으면 뒤에 공들인 구성은 열리지도 않습니다. 제목을 전환할 수 있는가가 전달력의 수준을 결정합니다.

제목을 구체화하는 축을 미리 정해두면 매번 감에 기대지 않고도 같은 자리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기획 순서에서 제목을 맨 앞으로 당기는 것만으로도 뒤 작업의 방향이 함께 정해집니다.

정확한 명칭을 장면의 말로 어떻게 옮길까요?

기준은 하나입니다. 내가 아는 정도를 드러내는 쪽이 아니라, 상대가 조금 더 편안해질 수 있는 쪽인가입니다. 건설 분야의 한 회사에는 전 직원이 들어야 하는 필수 교육이 있었고 원래 제목은 〈건축 소음 진동의 이해〉였습니다. 이 기준으로 다시 보면 그 교육이 실제로 다루는 것은 층간소음이라는 생활 문제이고, 제목은 그 장면에서 나올 법한 대사인 〈엄마 집에서 귀신 소리가 나요〉로 옮겨집니다.

제목이 바뀌자 담당자 본인이 자기 경험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자는데 문틈 사이로 소리가 났고 그것이 시공 문제였다는 이야기, 자신은 그 소음을 잡아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그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제목 한 줄이 바뀌자 없던 소재가 딸려 나온 셈이죠.

바꿀 말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를 맡은 담당자는 자신은 안 된다며 손을 들었고, 처음 나온 대안은 〈철근과 콘크리트를 어떻게 알아갈 것인가〉 정도였으며, 그다음에 나온 말도 "철근과 콘크리트는 상보적이다"라는 전문 표현이었습니다. 돌파구는 문구를 더 짜내는 쪽이 아니라 그 주제와 얽힌 자기 경험 속 인물과 관계를 캐묻는 쪽에서 나왔습니다.

질문이 이어지자 담당자는 한참 뒤 훗날 아내가 된 연인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녀가 철근이라면 자신은 콘크리트라는 문장이 그 자리에서 나왔고, 그 문장이 그대로 〈철근 남과 콘크리트 여의 러브 스토리〉라는 제목이 됐습니다.

제대로 옮겼는지 확인하는 기준선은 단순합니다. 일곱 살 아이에게 설명할 수 없다면 본인도 아직 이해한 것이 아니고, 실제로 아이에게 설명해본 뒤 아이가 이해한 만큼만 남기고 구조를 고치면 됩니다. 이 기준을 통과하려면 아는 것을 전부 티 내려는 태도를 먼저 내려놓아야 합니다. 다 알고 있다는 표시는 격을 높여주기보다 오히려 떨어뜨리는 쪽에 가깝습니다.

정확한 명칭을 고집하는 제목은 상대가 내 세계로 넘어와 주기를 기다리는 제목이고, 장면의 말로 옮긴 제목은 내가 먼저 건너간 제목입니다. 전달이란 상대를 내 세계로 초청하거나, 내가 상대의 세계로 건너가는 일입니다.

장면의 말과 검색어를 한 제목 안에 어떻게 같이 둘까요?

클릭 여부와 검색 노출까지 책임지는 제목이라면 장면의 말만 남겨서는 안 됩니다. 사내 교육처럼 참석이 이미 확정된 자리의 제목은 밋밋해도 사람이 어차피 그 자리에 앉습니다. 반면 채널에 올리는 제목은 열지 말지 자체를 결정하고 검색 노출까지 좌우하죠.

장면의 말로 옮기는 원칙은 그대로 유효하지만, 검색되는 말이 제목에서 완전히 사라지면 유입 경로 하나를 통째로 잃게 됩니다. 〈엄마 집에서 귀신 소리가 나요〉만 남기는 대신 "층간소음"처럼 사람들이 실제로 검색창에 치는 말을 한 제목 안에 함께 두는 절충이 필요합니다.

회사의 촬영 자산을 다루고 계시다면 같은 문제가 파일명에서도 반복됩니다. 강연·인터뷰·웨비나 촬영본의 파일명과 잘라낸 클립 제목은 대개 발표 자료의 목차명을 그대로 씁니다. 내부에서는 정확하지만 밖에서는 아무도 부르지 못하는 이름이죠.

클립마다 이 구간이 누구의 어떤 장면인가를 한 줄로 적어두는 규칙만 세워도, 배포 단계의 제목 작업이 매번 처음부터 시작되지 않습니다. 숏폼으로 재가공하는 공정에서 매번 시간을 잡아먹는 자리가 바로 여기입니다.

한눈에 비교

정확한 명칭으로 부른 제목 상대의 장면으로 옮긴 제목
건축 소음 진동의 이해 엄마 집에서 귀신 소리가 나요
철근 콘크리트 구조 철근 남과 콘크리트 여의 러브 스토리
이미 그 주제를 아는 사람만 알아봅니다 그 문제를 겪는 사람이 자기 이야기로 읽습니다

오늘 바로 적용한다면

  • 최근 올린 콘텐츠 제목 다섯 개를 펼쳐놓고, 발표 자료 목차명이 그대로 얹혀 있는 것에 표시합니다
  • 표시한 제목마다 그 문제를 겪는 사람이 어떤 장면에서 무슨 말을 뱉을지 한 줄로 적습니다
  • 그 한 줄에 사람들이 실제로 검색창에 치는 말을 하나 붙여 제목을 다시 씁니다
  • 바꾼 제목을 일곱 살 아이에게 설명해보고, 아이가 이해한 만큼만 남기고 구조를 고칩니다
  • 촬영본 클립마다 이 구간이 누구의 어떤 장면인지 한 줄로 적어두는 규칙을 세웁니다

자주 묻는 질문

제목이 정확한데 왜 아무도 열어보지 않을까요?

정확한 명칭은 이미 그 주제를 아는 사람만 알아보기 때문입니다. 정작 그 문제를 매일 겪는 사람은 그 이름으로 자기 문제를 부르지 않아서, 제목 앞에서 자기 이야기인 줄 모르고 지나갑니다. 손댈 곳은 내용의 깊이가 아니라 그 내용을 부르는 방식입니다.

장면의 말로 바꿀 표현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요?

문구를 더 짜내는 대신 그 주제와 얽힌 자기 경험 속 인물과 관계를 캐물으면 됩니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라는 제목은 담당자가 훗날 아내가 된 연인 이야기를 꺼내면서 〈철근 남과 콘크리트 여의 러브 스토리〉가 됐습니다. 표현은 사전이 아니라 자기 경험 안에 있습니다.

장면의 말로 바꾸면 검색 노출을 포기해야 하나요?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내 교육처럼 참석이 확정된 자리와 달리 채널에 올리는 제목은 검색 노출까지 책임지므로, 검색되는 말이 완전히 사라지면 유입 경로 하나를 통째로 잃습니다. 장면의 말 옆에 "층간소음"처럼 실제로 검색창에 치는 말을 함께 두는 절충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