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발주자 브랜드 성장 순서 전략, On이 14년간 지킨 확장 원칙
자원도 인지도도 없던 스위스 러닝화 브랜드 On은 유통과 카테고리를 확장하는 순서를 지켜 14년 만에 시가총액 23조 원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후발주자가 쓸 수 있는 순서 전략을 콘텐츠 운영까지 확장해 정리했습니다.
3줄 요약
- 자원과 인지도가 부족한 후발주자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는 큰 예산이 아니라 확장의 순서입니다.
- On은 러닝 전문 매장에서 신뢰를 먼저 쌓은 뒤 대형 매장과 백화점, 플래그십과 D2C로 순서대로 넓혔습니다.
- 넓은 대중을 처음부터 노리기보다 한 주제에 깊이 몰입한 집단이 초기 팬과 기술 혁신을 동시에 만듭니다.

강연이나 인터뷰 같은 롱폼 영상을 쌓아둔 사업자에게 후발 브랜드의 성장 방식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미 가진 자산을 어떤 순서로 꺼내 놓느냐가 채널의 성장 속도를 가르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내 상품을 밀기보다, 먼저 신뢰가 형성된 자리에서 인지도를 쌓은 뒤 내 제품으로 확장하는 순서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스위스에서 출발한 러닝화 브랜드 On은 창업 14년 만에 '차세대 Nike'로 불리며 2024년 기준 시가총액 약 23조 원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거대 브랜드가 즐비한 시장에서 후발주자가 자리를 잡은 배경에는 '순서'라는 원칙이 있습니다.
조바심이 날 때 필요한 것은 더 큰 한 방이 아니라, 100m가 아닌 마라톤의 호흡입니다. ENLIT은 On의 성장 경로를 유통·카테고리·가치의 순서라는 세 축으로 나누어, 롱폼 자산을 가진 브랜드가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까지 이어서 정리했습니다.
자원이 부족한 브랜드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시작점은 완성된 제품이 아니라 해결하고 싶은 문제 하나입니다. On의 창업자 Olivier Bernhard는 스위스 철인3종에서 여섯 번 우승한 선수였고, 부상 없이 '구름 위를 달리는' 러닝화를 원했습니다. 그 출발점은 Nike 러닝화에 정원 호스를 붙인 프로토타입이었습니다.

이후 친구인 David Allemann, Caspar Coppetti와 함께 2010년 On을 세웠고, Roger Federer가 지분 3%를 받고 홍보대사로 합류하며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2024 파리올림픽에서는 로봇이 접착제 없이 만든 170g의 LightSpray 러닝화로 주목받았습니다. 조악한 시제품에서 출발한 문제의식이 십수 년 뒤의 기술로 이어진 경로입니다.
ENLIT이 보기에 이 대목의 핵심은 완성도가 아니라 문제의 선명함입니다. 롱폼 영상을 콘텐츠로 옮길 때도 잘 만든 편집본보다, 시청자가 실제로 겪는 문제를 정확히 짚은 한 대목이 먼저 반응을 만듭니다.
조직의 몰입은 어떻게 제품 경쟁력이 되나요?
On의 경쟁력은 기술 이전에 문화에서 나옵니다. Bernhard는 낙제생이었지만 러닝으로 삶이 바뀐 인물이었고, 그 몰입이 조직 전체에 스며 있습니다. 기술은 결과이고, 그 기술을 만들어 낸 조건은 특정 주제에 미친 듯 파고드는 사람들의 밀도입니다.

스위스 취리히의 On Labs에는 디자이너, 소재과학자, 엔지니어, 생체역학 전문가 등 400여 명이 모여 협업합니다. 눈에 띄는 점은 모든 직원이 소속 팀과 무관하게 아이디어를 낸다는 것입니다. Phil Knight가 쓴 Nike 창업기 『슈독(Shoe Dog)』과 겹치는, 신발에 몰입한 집단의 서사입니다.
러닝화를 만들어 본 적 없다는 무지는 오히려 CloudTec과 LightSpray 같은 혁신의 자양분이 됐습니다. 약점을 강점으로 뒤집은 것입니다.
넓은 대중을 겨냥한 무난한 콘텐츠보다, 한 주제를 깊게 파고든 콘텐츠가 초기 팬을 만듭니다. 롱폼 하나에서 숏폼을 뽑을 때도 가장 몰입도가 높았던 구간부터 꺼내는 편이 유리합니다.
On은 유통 확장의 순서를 어떻게 설계했나요?
순서 전략이란 무엇을 하느냐보다 무엇을 먼저 하느냐로 성장 경로를 설계하는 방식입니다. 2010년대는 D2C 열풍의 시대였고 Dollar Shave Club, Warby Parker, Casper처럼 많은 스타트업이 처음부터 소비자 직접 판매로 뛰어들었습니다. On은 반대로 갔습니다.

초기에는 Runners Need 같은 러닝 전문 매장부터 공략했습니다. 그다음 대형 스포츠 매장으로, 이어 Bloomingdale's와 Nordstrom 같은 고급 백화점으로 넓혔습니다. 과도한 할인을 금지해 프리미엄을 지켰고, 인지도가 충분히 쌓인 뒤에야 플래그십과 D2C를 본격 도입했습니다.
카테고리도 순서를 지켰습니다. 러닝에서 시작해 테니스와 하이킹, 그리고 라이프스타일로 확장했고 모델 기용 역시 운동선수에서 배우 Zendaya로 넓혀갔습니다. 전문가 집단의 인정을 먼저 확보하고 대중으로 이동한 경로입니다.
콘텐츠에도 같은 순서가 적용됩니다. 이미 신뢰가 형성된 커뮤니티와 플랫폼에서 인지도를 쌓은 뒤 자사 채널과 제품으로 끌어오는 편이, 처음부터 자사 채널만 붙잡는 것보다 축적 속도가 빠릅니다.
성능과 지속가능성은 양자택일이어야 할까요?
On은 성능과 지속가능성을 둘 중 하나로 두지 않았습니다. Cloudneo에는 월 29.99달러의 신발 구독 서비스를 도입해 반납과 재활용을 설계했고, Cloudprime처럼 재활용·탄소 배출물 원료로 만든 소재도 개발했습니다. 두 가치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음을 제품 구조로 증명한 사례입니다.

소비자는 On을 신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친환경 행동을 하게 됩니다. 신념을 강요하는 대신 선택을 슬쩍 설계하는 Nudge 방식입니다.
ENLIT은 이 구조가 콘텐츠 운영에도 그대로 옮겨진다고 봅니다. 조회수와 브랜드 신뢰를 양자택일로 두는 대신, 자극적인 후킹 없이도 끝까지 보게 만드는 구조를 설계하는 쪽이 오래 남습니다. 롱폼에서 잘라낸 숏폼이 유리한 지점도 여기에 있습니다.
브랜딩을 마라톤으로 본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브랜딩을 마라톤으로 본다는 것은 성과를 한 번의 폭발이 아니라 누적으로 계산한다는 뜻입니다. On은 14년에 걸쳐 유통, 카테고리, 모델, 가치를 한 단계씩 넓혔고 각 단계마다 다음으로 넘어갈 근거를 먼저 만들었습니다. 100m 경주의 기준으로 보면 느린 선택이지만, 마라톤의 기준으로는 이탈 없는 경로입니다.

단발성 바이럴에 지친 브랜드에게 이 방식은 조용한 교정점이 됩니다. 이번 달의 조회수가 아니라, 1년 뒤 남아 있을 인지의 총량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ENLIT의 관점에서 롱폼 자산은 이 마라톤에 특히 잘 맞는 재료입니다. 이미 찍어둔 영상은 소진되는 광고비와 달리 시간이 지나도 다시 꺼내 쓸 수 있는 재고이고, 꾸준히 쪼개 내보내는 것만으로 누적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한눈에 비교
| 항목 | 조바심 나는 방식 | On이 지킨 순서 |
|---|---|---|
| 유통 | 처음부터 D2C로 직접 판매 | 러닝 전문 매장 → 대형 스포츠 매장 → 고급 백화점 → 플래그십·D2C |
| 카테고리 | 초기부터 전 영역 동시 확장 | 러닝 → 테니스·하이킹 → 라이프스타일 |
| 모델 기용 | 인지도 큰 대중 스타부터 | 운동선수에서 시작해 배우 Zendaya로 확장 |
| 가격 | 할인으로 초기 판매량 확보 | 과도한 할인 금지로 프리미엄 유지 |
| 가치 | 성능과 지속가능성 중 택일 | 구독·재활용 소재로 두 가치를 함께 설계 |
오늘 바로 적용한다면
- 내 채널이 지금 100m를 뛰는지 마라톤을 뛰는지, 최근 3개월 콘텐츠 기준으로 한 줄 진단해 봅니다.
- 내 제품을 바로 밀기 전에 먼저 신뢰를 빌릴 수 있는 커뮤니티나 플랫폼을 두 곳 적어 봅니다.
- 가진 롱폼 중 가장 몰입도가 높았던 구간 하나를 골라 숏폼 소재로 먼저 꺼내 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후발주자가 처음부터 D2C로 가면 안 되나요?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인지도가 없는 상태의 D2C는 신뢰를 스스로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는 방식입니다. On은 러닝 전문 매장처럼 전문성이 인정되는 채널에서 먼저 평판을 쌓고, 인지도가 충분해진 뒤에야 플래그십과 D2C를 본격 도입했습니다. 순서를 바꾸면 같은 자원으로 훨씬 많은 설득 비용을 치르게 됩니다.
좁은 주제에 몰입하면 시장이 작아지지 않나요?
시장이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시작점이 좁아지는 것입니다. On은 러닝이라는 한 카테고리에 몰입한 뒤 테니스와 하이킹, 라이프스타일로 넓혔고 몰입에서 나온 CloudTec 같은 기술이 확장의 근거가 됐습니다. 몰입은 확장의 반대가 아니라 확장의 전제입니다.
성능과 지속가능성을 함께 가져가면 비용이 늘지 않나요?
두 가치를 결합하는 방식에 따라 답이 달라집니다. On은 Cloudneo에 월 29.99달러의 구독 서비스를 붙여 반납과 재활용을 사업 구조 안에 넣었고, Cloudprime에서는 재활용·탄소 배출물 원료를 소재로 개발했습니다. 지속가능성을 비용 항목이 아니라 제품과 수익 구조의 일부로 설계한 접근입니다.


